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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입니까 결단입니까? Time to be patient or time to be decisive?


지난 주일 호수교회에서는 레소토에서 사역하시는 김억수 선교사님을 모시고 말씀과 선교 보고를 들었습니다. 저와는 보스톤에서 함께 공부하시던 분인데 작은 교회를 맡아 목회하시다가 선교를 결단하셨습니다. 보스톤은 목회가 정말 힘든 곳이기에 저도 떠나는 것이 맞다고 믿었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과연 그렇습니다.


보스톤은 영적으로 척박한 곳입니다. 탁월한 교수들과 학생들이 모이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반면, 자신의 삶의 길을 찾아 숨가쁘게 살아가는 그들 속에서 영혼에 대한 생각, 영원에 대한 소망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살인적인 물가도 한 몫 합니다.


그래서 그 분은 그 곳을 떠나 갈급한 영혼들 200만명이 살아가는 조그마한 나라, 남아공 한 가운데 섬처럼 떠 있는 고산지대의 나라, $120이면 4인 가족이 한 달을 생활할 수 있는 가난한 그 나라에 가서 복음을 가르치고, 생명의 길을 가르치고, 도덕과 질서를 가르치며 지난 10년을 살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수많은 영혼들이 그 분이 설립한 교회와 신학교,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통해 복음을 듣고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Bloom where you are planted” (심기워진 곳에서 꽃을 피워라)도 맞는 말이지만 “Move to where you can bloom” (꽃을 피울 수 있는 곳으로 가라)도 때론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옮겼다고 인내가 필요하지 않은 것도 아닐 겁니다. 인내와 결단, 결단과 인내가 함께 가야 하는데 언제가 인내가 필요한지, 언제 결단이 필요한지를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이 요구되는 시점이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외치던 사도 바울을 생각합니다 (빌립보서 1:18).


우리는 성공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그 뜻을 이루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되었고,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바라건대는 평신도들도 같은 생각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물질주의에 반하는 생각, 세상의 풍조를 따르지 않는 생각, 나의 안락함을 저버리는 생각을 하는 것이 쉽진 않겠지요. 하지만 영원한 삶이 기다리고 있음을 생각하면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소개하고 함께 따르는

호수교회 김철규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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