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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때가 아름답습니다


지난 주에 도와드렸던 분들 중에 직장을 잃고 5년 동안 홈리스로 살다가 여러 병원을 전전하던 분이 있었습니다. 거리에서 살다가 몸이 심하게 아파오자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췌장암 진단을 받았지만, 수입도 보험도 전혀 없는 그를 이 병원 저 병원이 내쳤습니다. 홈리스로 살던 분들은 대개 정부로부터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격이 안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적절한 때에 필요한 조치들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족과 친구가 없거나, 혹은 있어도 연락하지 않습니다. 돈도 없고 정부에서 받는 혜택도 없습니다. 몸은 아픈데 약도, 갈 곳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제발 나 좀 도와주세요’라고 공손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입에는 불평이 가득하고, 주변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되어버립니다. 말버릇이 이러니 아무도 도와주려 하지 않고, 도와주려 했다가도 이내 두 손들고 물러섭니다. 이 분도 그나마 그를 거둬들여 살게 하려 했던 사람에 대한 온갖 모함을 하다가 저에게 연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진통제를 비롯한 필요한 약을 얻게 도와드리고 그를 거둬들여주려 했던 사람과 화해시켜서 살 곳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저는 이런 분들의 현실과 그들의 언어 및 생활 습관을 보면서, 현실과 습관의 상관 관계를 비교해 보곤 합니다. ‘아, 평생 이런 습관을 가지고 살았기에 이렇게 되는구나’하는 인과 관계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관계가 보입니다.

신기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 중에 불평하고 남을 욕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두루 만나 보았지만 부자들이 남을 욕하고 불평하는 경우는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난한 사람들은 많이들 그렇습니다. 가난한 것이 한 개인의 탓일 수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서로 다른 양상을 띄게 되는 데에는 태도의 차이가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 수동적인 사람들은 대개 다른 사람을 탓하고 자신은 피해자라 생각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현실에 대한 인식 면에서도 그렇습니다. 자기가 처한 현실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고, 그것으로부터 도피하려 하지, 내가 해결하고 타계하겠다는 책임감을 갖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는 말씀은 이런 분들에게, 그리고 때론 감사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다는 표현은 ‘모든 때가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추수할 때도 아름답지만,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갈 때도 아름답습니다. 원하는 곳 마음껏 다닐 수 있던 때도 좋았지만, 집에 앉아 조용하게 내면을 성찰하게 되는 이 시절도 좋습니다.

우리는 모든 때를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로 인식해야 합니다. 모든 때가 아름답습니다. 우리 역사의 주관자가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록 장엄한 역사 속에 한 점과 같은 존재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살게 하시고 수고에 대가를 얻게 하시는 우리 주님의 은혜가 고맙습니다.

예수님을 소개하고 함께 따르는

호수교회 김철규 목사 드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전도서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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