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추구합니다


마이클 샌달이라는 교수가 있습니다. “정의”라는 제목의 철학 강의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철학자입니다. 이 분의 첫 강의는 재미있는 예화로 시작합니다. 당신이 전동차 운전자입니다. 레일을 따라 언덕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브레이크가 고장이 났습니다. 당황하여 어떻게든 차를 세워보려 하지만 기계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눈을 들어 앞을 보니 사람들이 다섯 명 서있습니다. 소리를 질러 보지만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갈림길이 나와 거기서 왼쪽으로 틀면 거기에는 한 사람만 서있습니다. 그냥 가게 둘까요, 아니면 방향을 틀어서 한 사람만 죽게 할까요?

자 이번에는 상황을 바꿔 봅니다. 내가 길에 서있습니다. 저 언덕 위에서 전동차가 달려오는데 운전자의 얼굴을 보니 브레이크가 들지 않아 너무도 당황한 것 같습니다. 그냥 차가 가면 앞에 길에 서 있는 다섯 사람을 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옆을 보니 아주 뚱뚱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밀면 차가 멈춰 다섯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을 밀어야 합니까?

중요한 이슈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가치를 숫자로 정할 수 있는가 (한 사람 vs. 다섯 사람), 수동적으로 다섯 사람 죽게 두는 것과, 다섯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모는 능동적 대처 사이에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사실 정의의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그러다 보니 평생 이 문제만 연구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성경은 법적 정의와 회복적 개념을 구별합니다. 법적 정의란 말 그래도 문자적 법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잘못한 사람이 벌을 받는 것입니다. 훔친 사람이 감옥에 가는 것입니다. 반면 회복적 정의란 훔친 사람의 의도를 보는 정의입니다. 장발장처럼 빵을 훔친 사람이 다시 빵을 훔치지 않아도 되도록 어려운 사람들이 가난을 극복하도록 돕는 정의를 의미합니다. 내가 좀 여유가 있어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하는 정의의 실현입니다.

회복적 정의는 마치 물의 모습 속에서 쉽게 발견됩니다. 수영장을 제거한 뒷마당에 비가 올 때마다 땅이 꺼지면서 물이 고이는데, 그래서 저는 작은 도랑들에 흙을 채워 평평하게 합니다. 회복적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은 이렇게 물을 따라 가면 됩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만 흐릅니다. 그 물이 고인 그 자리에 가서 흙을 고르고 채워 넣으면 됩니다. 낮은 자리, 섬김의 자리, 고르게 하고 평평하게 하는 자리에 가면 됩니다.

낮은 곳으로 간다는 것, 물이 모인 호숫가로 간다는 것은 그래서 깊은 함의를 갖습니다. 호숫가로 가는 사람은 세상을 고르게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정의를 세우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소개하고 함께 따르는

호수교회 김철규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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