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을 덮어주시는 사랑, 나도 따르겠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불편한 관계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만나기 부담스러운 사람들, 우연히 만나는 것조차 피하고 싶은 사람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존중과 신뢰의 원칙이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깨어지는 것은 한 쪽이 먼저, 혹은 양 쪽이 함께 원칙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관계에 담이 생긴 것이지요. 그러면 대개 한쪽이 다른 한쪽을, 아니면 서로가 서로를 정죄하며 피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대개 이런 관계들을 회복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회복해야 할 가치도 느끼지 못합니다.

관계 회복의 노력은 그 관계 안에 사랑이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깨지는 경우 대개 부모가 먼저 다가갑니다.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이 관계의 벽을 허물기 위해 자존심도 버리고 다가갑니다. 오히려 더욱 성내고 자존심 세우려 드는 자녀 앞에서 자신을 바닥까지 낮추기도 합니다.

부모의 이런 모습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닮았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관계를 깨뜨렸을 때, 죄 지은 인간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깨어진 관계의 회복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 회피였습니다. 죄 때문에 갖게 된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다가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우리를 실망시키고 회피하는 자녀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다가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찾아갑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이것입니다. 당신과의 관계를 회복하자고 찾아와 대신 죄값을 치뤄 주셨습니다.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물어 내시고, 우리의 허물은 당신의 사랑으로 덮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이런 사랑을 허물의 사함, 죄를 가림,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심, 죄악을 싸매 주심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 서로의 허물을 덮어줄 것을 요구합니다. 허물을 덮어주는 사람은 사랑을 구하는 사람, 남의 허물을 거듭거듭 말하고 다니는 사람은 친한 친구들을 이간질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인생 말미에 이런 일이 있었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