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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기뻐할 수 있을까


보스톤에서 달라스로 운전했던 적이 있습니다. 1800마일, 차로 쉬지 않고 달려야 26시간, 비행기로 4시간 20분 걸리는 거리입니다. 보스톤에서 아침 4시에 출발해서 밤 10시까지 중간에 화장실만 한 네 번 정도 들르고, 점심은 햄버거 사서 차에서 먹으며 운전했습니다. 빨리 가야 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운전에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차에서 듣는 강의들도 좋았고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도 좋았습니다. 코네티컷, 뉴욕, 뉴저지, 펜실베니아, 메릴랜드, 버지니아, 캐롤라이나, 테네시, 알라배마, 미시시피, 그리고 텍사스. 가는 곳마다 “Welcome to Virginia” “Welcome to North Carolina” “Stars fell on Alabama, Welcome!” 다들 이러는데 텍사스는 들어오자마자 선글라스 쓴 총을 찬 카우보이 그림에 이렇게 쓰여져 있더군요: “Don’t mess with Texas.” 좀 특이하다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텍사스에 들어오니 기뻤습니다. 달라스에 있는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러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교 시절 아침마다 모여 함께 기도하던 친구입니다. 저희 고등학교에는 아침에 20분 쉬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저와 열댓 명 되는 친구들이 건물 뒤에 모여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은혜를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곤 했습니다. 대개 남자 고등학생들이 건물 뒤로 가면 담배 피우러 가는 건데, 기도하러 가는 저희들을 선생님들도 의심하지 않았고 노는 친구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습니다. 함께 예배하고 고아원 다니고 장애인 학교 다니고 공연하던 친구들 중 한 사람입니다. 그 중 적어도 네 명이 목사가 되었습니다. 어릴 적 친구들은 늘 마음이 편하고 좋은데 이 친구는 그런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편한 친구입니다. 그래서 달라스가 가까워지면서 기뻤습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러 가면, 그래서 거기에 점점 가까워지면 우린 기쁨을 경험합니다. 제가 어릴 때 늘 일을 하셔야 했던 저의 어머니는 ‘우리 규야 보고 싶어서 엄마가 서둘렀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곁에 두지 못하고 일하셔야 했지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자식을 보고 싶은 마음에 기쁨이 넘치셨던 것 같습니다. 신기한 것은, 기뻐하라 (rejoice)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카이레테’인데, ‘좋아하여 가까이 가고자 몸이 기우는’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카이로’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보고 싶은 사람, 보고 싶어 다가갈 때 느끼는 기쁨을 표현한 단어인 셈이지요. 제가 ‘나는 언제 기뻐하는가’라고 고민하다가 발견한 단어라 신기합니다. 더불어 기뻐하라는 단어는 ‘은혜’를 뜻하는 ‘카리스’라는 단어에도 맞닿아 있습니다. 두 가지 어원을 합쳐 보면 ‘하나님의 은혜에 가까이 다가갈 때 우리는 진정한 기쁨을 맛볼 수 있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혹시 삶에 기쁨이 없으십니까? 그렇다면 자신에게 ‘나는 과연 매일매일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라고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기뻐할지 슬퍼할지를 택하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무엇에 다가갈 것인지를 택하는 것은 나의 결정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기쁨과 쾌락을 혼동합니다. 나에게 쾌락이 있어야 기쁨이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공이 탁탁 맞아서 그린 위로 단번에 올라가야 좋습니다. 물고기가 미끼를 물고 늘어지는 그 손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보아야 기쁨이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쾌락입니다. 이런 것들은 쾌락입니다. 기쁨은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 보고 기뻐하라고 가르치는 이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이 글을 썼습니다. 위생도 문제고, 음식도 문제고, 감옥 내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문제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런데 이 감옥에 갇힌 이 사람이 우리 보고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왜 그럴 수 있습니까?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날마다 가까이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닻이 어디에 놓여 있습니까? 파도가 흔들수록 더욱 깊이 바다 속으로 파고드는 그의 닻은 하나님께 맞닿아 있었습니다. 우린 ‘내가 더 얻어야만 기뻐할 수 있다, 내가 이것을 이루게 될 내일, 나는 비로소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쁨은 현재에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가까이 나아가는 그 은혜 속에 있습니다. 호수교회 김철규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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