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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 인간의 언어


게리 채프만(Gary Chapman)이란 분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다섯 가지의 사랑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 다섯 가지는 인정하고 칭찬하는 말, 함께 하는 시간, 선물, 섬기는 행위들, 신체적 접촉입니다. (words of affirmation, quality time,receiving gifts, acts of service, or physical touch) 예를 들어 부부 간에도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 다릅니다. 어떤 남편은 꽃을 사들고 집에 들어가거나 설거지를 해주기도하고, 혹은 그저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사랑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옆에 앉아서 핸드폰 쳐다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 어떤 아내는 맛있는 음식으로, 혹은 허그와 키스

로 표현합니다. 물론 한 가지 방법에만 제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아이가 어릴 때 숨바꼭질하며 숨어주고, 아빠가 술래일 땐찾아도 못 찾은 척 기다려주고, 체스를 두면 일부러 져주면서 사랑을 표현하고 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OO야, 인생은 냉정한 거야. 니가 실력이 없으면 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라고 말하면서 그냥 아이를 이겨버린다면, 사랑을 잘 표현하는 아빠의 모습은 아니겠지요. 저는 아직도 체스 게임에서 저를 이기면 거듭거듭 좋아하던 딸아이의 대여섯 살 때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물론 아이가 고등학생이 된 지금은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고 사랑을 표현합니다. 지금은 밤에 공부할 때 같이 옆에 앉아 있어주고 (제가 옆에 있는 것을 싫어할 때도 있지만 저에게 그냥 이런저런 얘기를 쏟아낼 때도 많습니다. 싫어하는 것 같을 땐 슬그머니 딴 곳으로 가서 책을 읽지요), 피곤해하면 함께 산책해주고 얘기를 들어줍니다. 어릴 때의 일들이 지금 추억이 되듯, 지금의 기억도 훗날 추억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우리의 사랑과 관심은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이해 할 수 있는 방식, 공감하고 기뻐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전해져야 합니다. 물론 아이가 어른에게, 미성숙한 사람이 성숙한 사람에게 맞춰 주긴 쉽지 않습니다. 항상 더 성숙하고 더 너그럽고 경험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맞춰주게 되지요. 인간이 동물과 의사소통하려고 할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물이 인간 의 언어를 배울 수 없고, 인간이 동물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과 도구를 통해 소통합니다.

이런 관점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육신(incarnation)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와 소통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해 오셨습니다. 아브라함, 노아, 모세에게는 직접 대화의 방식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모세와 사사들, 선지자들을 통한 계시 및 율법을 통한 간접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신기한 것은 이 땅에 오신 그 분이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보다 훨씬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표현하셨다는 겁니다. 먼저 그 분은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같이 먹고 자고 대화하고 여행하고... 3년 밖에 되지 않는 사역의 기간이지만,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도 하루 중 극히 일부만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날의 관행에 비할 때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쏟으신 겁니다. 그 많은 시간, 제자들, 혹은 무리들과 함께 하시며 가르치시고 고치시며 수많은 섬김의 모습도 보여주셨습니다.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칭찬

하시고, 그들의 삶을 세워주신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삭개오에게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말씀하시며 칭찬하셨습니다. 이방인 백부장에게도 “이런 믿음은 이스라엘 중에서도 보지 못하였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십자가 상에서도 옆에 있던 강도를 향해: “오늘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칭찬하며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그러나 결코 쉬운 사랑은 아니었습니다. 고통스런 죽음을 앞둔 그 분은, 당신이 감내해야 할 고난의 무게를 잘 알고 계시던 그 분은 이런 말씀도 하셨지요: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하지만 자신이 오신 목적을 분명히 알고 계셨던 주님은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시고,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해될 수 있는 모습으로, 인간의 언어로 전달될 수 있도록 그 분은 자신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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