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란 이런 것입니다


미국의 좋은 학교들은 “need-blind policy”라는 것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학생이나 그 부모가 학비를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공부를 아주 잘 하거나 탁월한 재능이 있는 학생들은 혹시 가난하더라도 장학금을 줘서 공부할 수 있게 하지요. 그러나 공부는 적당히 잘 하지만 돈이 없다면 대학에 합격할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입학을 허용하더라도 학비를 은행에서 빌릴 것을 전제로 합니다. 반면 need-blind policy를 시행하는 학교들은 학생의 재정 형편과는 상관없이 학생들을 뽑습니다. 그리고 나서 보니 학생에게 돈이 없다면 학교에서 돈을 대주고 공부할 수 있게 합니다. “일단 네가 이 학교에 들어왔으니 앞으로는 우리가 책임진다”고 말합니다. 은혜입니다.

빅토르 휴고의 레미제라블이라는 소설을 잘 아실 겁니다. 장발장은 굶주리고 있는 여동생들과 가족들을 위해 빵을 훔친 혐의로 감옥에서 19년을 삽니다. 5년은 빵을 훔쳤기 때문에, 14년은 탈옥 시도 때문에 추가로 받은 기간입니다. 19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돌아온 장발장에게, 그러나 세상은 결코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여관에서 지내려 했지만 그의 신분증에 전과 사실이 기록되어 있었기에 받아주지 않습니다. 길거리에서 잠을 청하던 그는 인생의 씁쓸함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런 그에게 미리엘 주교가 쉴 곳을 제공합니다. 주교로부터 잘 대접받았습니다. 하지만 은으로 된 포크와 나이프를 보고 탐이 나서 훔칩니다. 경찰이 우연히 그를 심문하다가 은수저가 있는 것을 보고 체포했습니다. 그를 미리엘 주교에게 데리고 갑니다. 미리엘 주교는 화를 내기는 커녕, 오히려 “왜 내가 준 은촛대 두 개는 가져가지 않고 수저만 가져갔냐”면서 은촛대까지 장발장에게 안겨줍니다. 경찰은 그 모습을 보고 납득하여 떠납니다. 장발장은 다시 구속되는 것을 면했습니다. 은혜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일입니다. 하루는 한적한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제 또래의 아이들 세 명이 오더니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없다고 했더니 주머니를 보여 달랍니다. 보여줬더니 돈이 없는 것을 보고는 무작정 얼굴을 때리더군요. 그러고는 가버렸습니다. 아마 돈을 좀 줬으면 안 때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강도가 많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일부러 약간의 현금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돈을 주지 않으면 때리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강도 만난 사람의 얘기가 있습니다. 이 사람, 강도를 만나 심하게 매맞고 기절하여 길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피 묻은 사람을 업어다가 자기 말에 태우고 근처 여관에 가서 숙박비와 치료비를 내주고 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도움을 준 사람은 자기 옷에 피가 묻고 걸어야 했으며 돈을 써야 했습니다. 하지만 강도 만난 사람에게는 이 사람이 베푼 것은 순전한 은혜입니다.

아빠의 재산이 탐나서 자기 몫을 달라고 조르고 졸라 마침내 돈을 받아내서는 먼 나라에 가서 그 많은 돈을 다 쓰고 알거지가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파 돼지밥이라도 먹으려 했지만 아무도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먹을 것 부족함이 없는 아버지의 종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자신을 종으로 삼아 달라고 부탁하려고 집으로 돌아갔더니, 아버지는 자신의 겉옷, 자신의 부와 명예를 상징하는 그 옷을 돌아온 아들에게 걸치고 값비싼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였습니다. 은혜입니다.

우리는 또 한 번의 성탄절을 보냈습니다. 왜 우리는 이토록 크리스마스를 대단히 여기며 기념합니까? 바로 절대적 은혜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통받던 자에게서 고통이 사라지고, 압제 아래 있던 자가 자유케 되며, 어둠 속에 있는 이들이 빛을 보게 되는 사건—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습니다.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된 사건, 왕이 홈리스가 된 사건, 부자가 거지가 된 사건, 통치자가 노예가 된 사건,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기가 된 사건입니다.

우리가 성탄절에 서로에게 선물을 주지만, 그 선물들은 모두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기억하게 하는 리마인더로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자 받으십시오. 거저 드립니다. 당신은 이것을 값을 주고 살 수 없습니다. 아무 것도 돌려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돌려줄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은혜의 사건은 이미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평생 은혜를 주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창녀와 세리들과 함께 했던 것은 그들의 죄가 아름다워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더 은혜를 필요로 했고, 그들은 은혜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인식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든 죄인들,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우리들은 은혜의 사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함께 축하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은혜가 시작되었습니다.

호수교회 김철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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