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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붙들어 맵니다


어릴 적 시골에 갔다가 작은 아버지네 소를 끌어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 덩치 큰 녀석이 고삐를 당기자 스르르 당겨지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코에 고삐를 끼워 두어 그렇습니다. 고삐는 당기면 소가 아픕니다. 그래서 그 힘쎈 소도 이리저리 데리고 가는 것이 가능합니다. 어린 아이도 고삐를 쥐면 그 큰 소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코끼리는 어떻게 통제할까요? 코끼리는 코에 고삐를 낄 수가 없으니 다른 방법을 써야 합니다. 코끼리는 힘이 너무 세서 사람이 제어할 수 없으나, 어릴 때부터 훈련하면 가능합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어린 코끼리의 목에 밧줄을 묶고 튼튼한 기둥에 연결해 두는 겁니다. 아직 어린 코끼리는 밧줄을 끊을 수도, 기둥을 뽑을 수도 없으니 밧줄이 당겨질 때마다 ‘아, 내가 밧줄을 이길 수는 없구나’하고 깨닫게 됩니다. 물론 어린 코끼리에게 자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자유는 일정한 범위 내로 통제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커서 힘이 아주 쎄어진 다음에도 밧줄만 당기면 따라오게 됩니다.

동물들의 행동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2주 전엔 날씨가 추워져서 양과 염소가 좀 더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좀 더 넓게 펜스를 쳐주고 지붕과 바람막이도 설치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펜스의 작은 틈을 벌려 탈출하는 양을 보고 놀라웠습니다. 그 펜스 밖에 조금 더 풀이 많기 때문입니다. 먹을 것만 보면 그것 좇아가느라 바쁜 양의 모습이지요. 물론 그 양을 다시 잡아 넣을 때도 먹을 것을 이용합니다.

그래서 양들을 훈련시켰습니다. 펜스 밖으로 나와 있되 줄을 묶어 두는 것입니다. 줄을 좀 길게 해서 묶어 두면 마음껏 풀을 뜯어먹고 돌아다니지만 여전히 한 장소에 머물러 있고, 자신의 경계를 알게 됩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 찻길로 나가거나 위험한 동물들이 있는 숲속으로 들어가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했더니 그 다음 날부터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줄을 메어 다니면 강아지처럼 저와 발을 맞춰 걷습니다.

동물들을 보면 영적인 교훈들을 많이 얻습니다. 울타리 밖으로 나오면 풀은 조금 더 먹을지 모르지만 결국 자기에게 위험할텐데 왜 이럴 수 밖에 없을까 생각하다가 깨닫습니다: ‘아, 우리 인간의 모습이 이와 같구나.’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만 따라가다가 위험이 닥치는 것을 모르겠구나!’ ‘당장 눈 앞에 있는 풀만 먹다가 큰 그림을 놓치겠구나!’ 그래서 저 자신도 줄에 묶어 두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묶어주는 끈은 비전입니다.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 꿈은 비교할 수 없는 놀라움으로 열매 맺을 것입니다. C.S.Lewis는 말합니다. 천국을 소망한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켜 왔습니다. 초대 교회 사도들, 종교개혁 지도자들, 영국의 노예 해방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끈 William Wilberforce와 같은 사람들—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천국에의 비전으로 확고했다는 점입니다. 그들에게 고난이 없었습니까?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고난을 참을 수 있었던 것은, 잠시 잠간의 즐거움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가진 비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비전으로 자신을 붙들어 맸기 때문입니다.

호수교회 김철규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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