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프로토콜


요즘 서부에 가뭄이 심해서 먹을 것이 없는 곰과 방울뱀들이 인가로 많이 내려온다고 합니다. 만약 길을 가다가 곰을 만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곰으로부터 도망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리즐리 곰의 경우 시속 35 mph, 인간은 가장 빠른 사람이 28 mph. 그래서 배를 대고 엎드려 몸을 쭉 펴고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물론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합니다. 뱀을 만나면 어떻게 합니까? 적절한 도구가 있으면 제압할 수 있지만 도구가 없을 때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뱀을 가지고 놀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해를 입게 됩니다.


사람도 피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함께 하면 자신이 해를 입기 때문입니다. 성경, 특히 잠언에서는 거만한 자(mocker, scorner)가 바로 피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가르칩니다: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이 잡히느니라.” 이 사람들은 가장 신성한 것을 거부하고 조롱하는 사람입니다. Teachable 하지 않은 사람—특별히 권위를 부정합니다.


권위를 부정하는 사람은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권위를 경험하지 못하며 성장한 경우입니다. 최근 미술관에 간 초등학생이 1억원 짜리 작품 위에서 미끄럼을 타서 훼손시켰는데, 함께 있던 아빠는 작품을 훼손시키는 아들의 사진 찍고 있었습니다. 맘대로 해도 혼내거나 말리지 않으니 권위에 대한 배움의 기회가 있을 수 없습니다. 또 한 부류는 상처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상처의 종류는 여러가지가 있고, 상처를 잘 극복한 분들도 계시지만, 상처의 영향이 아직도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권위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소통이 쉽지 않습니다.


반면 소통이 쉬운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함을 일궈낸 분들입니다. 제가 직접 배운 교수님 중에 가장 유명한 분은 아마 하비 콕스라는 분일 겁니다. 이 분은 책과 그 유명세 덕에 전세계를 초대받아 돌아다니던 분입니다. 탁월한 학자이기 때문에 자신이 맞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것을 본 일이 없고, 수없이 많은 지역과 사람들을 방문하고 만났기에 사람에 대한 편견을 찾아보기 힘든 분이었습니다.


그 분의 수업에 머리를 허리까지 길러 따고 다니는 Native American 피를 받은 백인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눈과 피부색이 완전 백인인 그 학생이 열띤 토론을 하다가 내린 결론이 있었는데 그의 말이 이랬습니다: “Because our blood is purer than yours…” 잠시 침묵이 흐르고,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지만, 그의 피가 자신의 피 보다 순결하다고 믿기 때문은 아니었을 겁니다.


문제는 그와의 대화가 그 이후로 힘들어졌다는 점입니다. 그를 책망하고 바로잡으려 하는 이가 있다면 오히려 자신이 곤경에 처할 것입니다. 그와의 대화의 프로토콜이 깨어진 것입니다.


인간관계 소통의 프로토콜은 상호 존중입니다. 하지만 자만은 그것을 가로막습니다.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서 소통의 프로토콜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상호 간에도 소통이 쉽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키워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에겐 많은 변화가 요구됩니다. 때로는 살을 찌르는 고통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 교훈과 책망을 받는 사람은 지혜자입니다.


잠언은 한문으로 “찌를 잠” 자에 “말씀 언” 자를 씁니다. 잠언은 찌르는 말입니다. 영어로는 proverb: pro "forth" "forward" + verbum "word," 즉 앞으로 내뱉은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pro를 prod와 연결시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Prod는 소에게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고 막대기로 탁탁 치는 모습입니다. Verb는 말, 언어. 그래서 proverb는 이리 저리 방향을 고치기 위해 찌르고 치는 말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이런 말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바로잡아주는 말, 자꾸 찔러서 불편하지만 나를 고쳐주는 말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일시적 질책의 말보다 지속적으로 우리를 바로잡아 주는 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또한 명철, 즉 만물의 이치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분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바로 신과 인간, 인간 상호간을 잇는 소통의 프로토콜입니다.


예수님을 소개하고 함께 따르는

호수교회 김철규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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