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는 사람 남아있는 사람



소셜 미디어에 대한 반응은 다양합니다. 매일 열심히 들여다 보는 사람, 온라인보다는 얼굴보는 게 좋다는 사람, 인간 관계 피곤하니 얼굴도 안보고 인터넷도 안 할거라는 사람… 사람마다 입장이 다릅니다.


그렇습니다. 새로운 것이 등장할 때, 세상이 바뀌어 갈 때, 사람들의 반응은 늘 다양합니다.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이런 점에서 흥미로운 장면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18-19세기 유럽은 그 좋은 예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시민 혁명이 일어나고, 영국에서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합병되어 제국주의가 팽창해 가는가 하면, 미국에서는 영국의 통치를 종결하는 독립 전쟁이 끝났습니다. 18세기에 시작된 산업혁명은 제국주의 열방들의 힘을 크게 키웠을 뿐 아니라 그 힘을 멀리 퍼트릴 수 있는 기술의 발전도 가져왔습니다.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가 엄청나게 커져만 가던 시기입니다.


이 무렵 과학과 인간 지성에 대한 신뢰가 크게 확대되면서 인간의 자유와 이성을 강조하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 흐름을 우리는 계몽주의(Enlightenment)라고 부릅니다. 과학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그들은 성경을 읽을 때도 이성적으로,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부분들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신성함은 무시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 이성의 비판 대상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거기에 강한 반론을 펴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기독교는 교리가 아니라 삶이고, 지식이 아니라 실천인 것이야!” 특히 경건주의 (pietism) 자들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당연히 옳은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경건주의자들의 관심은 늘 세상보다는 자기 자신에게만 있었습니다. 세상과 단절하는 것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자신과 다른 이들에 대한 정죄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경건주의는 어떤 면에서는 이성주의보다 위험할 수도 있는데, 자신의 경험을 하나님의 계시인 말씀보다 위에 놓는 사람들이 경건주의자들 가운데 많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첫번째도 두번째도 아닌 사람들이 당연히 있습니다. “뭘 그렇게 따지니? 그냥 세상 흘러가는대로 살아. 뭐니뭐니 해도 인생은 행복하고 즐거워야지. 우리는 이성보단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으니 이 사람들을 우리는 낭만주의자들이라 부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활동하시던 시대에도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특히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본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이 왕이 되면 우리는 배고픔과 질병도 끝이야!”라고 생각하며 예수님을 왕으로 삼길 원했던 실용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식량이 충분한 세상이요, 오히려 미국인들이 다이어트에 쓰는 돈을 다 합치면 세계 인구를 다 먹여살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고대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식량이 충분히 있으면 땅도 권력도 살 수 있었던 세상이었으니 이 기적이 갖는 함의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반면, 그 기적을 보고도 “내가 저 사람 어디서 온지 아는데… 아니야,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고! 우리가 그 부모 형제를 다 아는데…”라고 말하며 예수님의 권위를 부정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자신 앞에 펼쳐진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를 보고도 자신의 제한된 지식과 경험을 의존하는 어리석은 이들이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육신의 양식에 연연해하지 말고 참된 양식과 음료인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영생을 얻으라는 그 분의 말씀을 들은 이들 중에는 예수님 곁을 완전히 떠나버린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가겠느냐?”

그러자 베드로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떠나간 자들에 비해 남아 있는 자들의 숫자는 지극히 적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베드로를 비롯한 소수의 제자들을 통해 온 세상을 복음화하는 놀라운 사역을 시작하셨으니, 열두 명, 아니 열한 명이 뿌리기 시작한 복음의 씨앗은 온 세상을 뒤덮었습니다.


숫자가 중요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떠나는 자가 있으나 남아 있는 자가 있고, 남아 있는 자가 많지 않으나 일을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숫자의 많고 적음이 문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남아있는 자들과 더불어 당신의 말씀으로 놀라운 일들을 이루십니다.


예수님을 소개하고 함께 따르는

호수교회 김철규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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