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같은 사람 A Donkey-like Person


사람과 가장 닮은 동물은 침팬지일 겁니다. 침팬지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전자를 갖고 있으며, 가족들이 모여 사는 형태도 인간과 비슷합니다. 여러 학자들이 갓난 침팬지를 입양하여 말을 가르쳐 보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하지 못했지만, 수화는 잘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수화 단어 두 개를 결합하여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는 능력까지 발휘합니다.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은 아마도 개일 겁니다. 개는 말과 동작을 병행하면 훈련할 수 있고, 제한되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늑대과이지만 늑대와는 달리 얼굴 근육이 발달되어 있어 인간에게 다양한 표정으로 의사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먹고 싶은 게 있을 때 불쌍하게보여 먹을 것을 얻어내는 것도 발달된 지능의 증거입니다. 버려진 개들은 종종 주인을 마지막으로 본 곳으로 돌아가는데, 과연 개는 똑똑하면서도 충성심이 매우 강한 동물입니다.

당나귀는 어떻습니까? 당나귀는 초식 동물들 중에 의사 표현을 가장 잘 하는 동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Magnolia에 있는 말구조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당나귀들의 다양한 울음 소리를 들어보았습니다. 질투, 분노, 불안, 기쁨 등의 감정들을 다양한 소리로표현해내는 당나귀의 능력은 참 놀랍습니다. 당나귀 두 마리 중 한 마리를 데리고 나갔다가 돌아오면 남아 있던 친구가 어찌나 질투를 하는지 모릅니다. 당나귀들은 감정을 참 잘 표현합니다. 그런 점에서 당나귀도 인간과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인간은 이지적인 존재이기도 하지만, 참 감정적이기도 하지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의사 소통이 매우 제한되어 있어 함께 살기는 힘들 겁니다.

하지만 일을 할 때의 당나귀는 매우 과묵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멍에가 가볍건 무겁건 주인을 따라 조용히 걷습니다. 얼핏 보면 고집스러워 보이지만, 그래서 당나귀들은 더 믿음직스럽기도 합니다.

저는 종려 주일을 맞을 때마다 당나귀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절묘한 대조에 주목하게 됩니다. 키가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 당나귀, 화려할것도, 아름다울 것도 없지만 그저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걷는 당나귀—그는 예수님의 몸을 받치고 있는 믿음직한 일꾼입니다.

반면 예루살렘 사람들의 모습은 그 당나귀의 모습과 매우 대조적입니다.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잘라 길에 폅니다. 한 벌 밖에 없는 귀한 외투를 길에 깝니다. 그러면서 외치는 말이 이렇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곳에서 호산나”

호산나의 뜻은 “지금 구하소서!”입니다. 지금 우리를 해방해 달라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평화와 번영을 달라는 말입니다. “지금 구원”을 외치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수단이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가 로마의 폭정아래 있으니 해방시켜 주소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가 가난하고 배고프니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소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의자존심이 무너지고 마음이 상했으니 우리의 민족적 자부심을 회복시켜 주소서!” 사람들은 아마도 그런 마음으로 소리쳤을 겁니다. 호산나 환호성을 지르며 예수님을 환영하는 저 예루살렘성의 사람들은, 그러나 며칠 후 폭도로 변해버릴 사람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