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톰 크루즈가 주연한 Edge of Tomorrow 라는 영화 포스터에 이렇게 쓰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live die repeat… 내용은 이렇습니다.전투 경험이 없는 공보장교가 외계인과 싸우는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외계인에 대해 잘 모르니 어떻게 공격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고, 그래서 싸우다가 곧 죽었습니다. 그런데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곧 다시 살아나 전쟁터에 뛰어들기 직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생이 거듭되고 각각의 삶에서 배운 전투의 기술은 삶과 죽음을 거듭할 때마다 발전해 갑니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외계인의 우두머리를 이기고 지구를 구했습니다…

그런 생각해 보셨습니까? 인생에 있어 크리티컬한 순간으로 돌아가서 다시 살아보는 겁니다. 언제로 돌아가시겠습니까? 고등학교 시절로다시 돌아가서 살아보겠다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아마존 주식이 1불이었던 때, 혹은 비트코인이 10센트였던 시절로 돌아가겠다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는 모두 과거 지향적인 사고입니다. 과거로 돌아가서 현재에서 좀 잘 살아보겠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미래 지향적인 죽음도 있습니다. 장차 다가올 미래를 바라보며 자신이 매일 죽는다고 말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매일 죽음의 위협을 경험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말 그대로 죽음의 직전까지 갔던 경험이 수두룩합니다. 강도를 만나고, 배가 침몰하고, 매를 맞고, 돌로 맞고, 먹지 못하고 잠자지 못하는 고생 속에 살아갔습니다. 그는 언제 죽을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죽는다고했던 그의 말은 곧 항상 죽음을 준비하며 산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소유물도 없었습니다. 디모데에게 자신을 방문할 때 어느 집에 두고 온 겉옷을 좀 갖다 달라고 편지할 정도로 그는 가난했습니다.

일전에 어떤 댁에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먼저 간 남편의 짐을 정리해야지’ 하면서도, 그 방에 들어갈 때마다 눈물이 나와서 도저히 정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어르신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남겨진 자리를 생각하는 삶—죽음을 준비하는 삶입니다. 많이 갖는 것이 덕이 아니며, 세상을 꼭 붙들고 있는 것은 날마다 죽는 삶이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날마다 죽는다는 말의 또 다른 뜻은 세상에 대해 죽었다는 뜻입니다. 세상을 붙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왜 사람들이죄를 짓습니까?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고, 지금 이 세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울은매일매일을 열정적으로 살면서도 삶에 집착하지 않았으니, 그의 삶은 오늘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매일 죽는 삶…

내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매일 생각하십시오. 오늘 어떻게 살지가 분명해집니다. 불필요한 것들에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욕심이 사라지고 기쁨과 감사가 회복됩니다.

누군가를 축복하는 삶을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에 내 자리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나로 인해 혜택을 누릴 사람들을, 그들의 삶의 자리들을생각하며 살아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