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요즘 딸아이가 대학 지원 에세이들을 쓰면서 어떤 주제로 자신을 표현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이와 대화하면서 여러가지 주제가 나왔습니다만, 그 중의 하나는 개척교회 목회자의 자녀로서 겪게 된 어려움과 그 극복의 과정입니다. 큰 교회 부목사직을 사임하고 나와서 제일 힘들었던 일 중의 하나는 제 아이에게 친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에는 친구들이 많아서 교회 가는 일이 즐거웠는데 이제는 어른들이나 아주 어린 아이들 밖에 없는 환경을 보며 아이가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아이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돌보고, 반갑지 않는 어른들과의 대화에도 참여해야 했습니다. 청소년들 누가 어른들과 대화하는 것 즐기겠습니까? 십대 아이들 무척이나 싫어합니다. 물론 당연히 옳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태도입니다. 고칠 수만 있다면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성숙한 아이들일수록 어른들과 대화를 하고, 어른들에게서 배웁니다.


제가 볼 때 제 아이는 그 어려운 과정을 잘 극복해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많은 자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같은 도전이 우리 호수교회 모든 아이들에게도 주어져 있고 다들 잘 극복해 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함께 어울려 노는 것을 보면 마음에 기쁨이 생깁니다.


아이들만 그렇습니까? 어른들도 서로 전혀 친구가 될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서서 대화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저는 기쁩니다. 나와 다른 이들과 더불어 어울리고, 대화하고,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바로 우리 주님의 모습을 본받는 일입니다. 우리 주님이 그렇게 이 땅에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


나무 위에 앉아 예수님을 내려보던 그 삭개오를 부르시던 예수님,

예수님은 자신도 그렇게 내려오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기의 모습이 아닌 것을 택하셨습니다.

신으로써 인간의 몸을 입으신 일입니다. 그 분은 그렇게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함으로, 자신을 버림으로 우리를 살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내려오신 우리 주님의 사랑을 어떻게 따라하시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도 노력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다리의 계단 하나하나를 올라가기 위해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