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내 삶을 주도하십니다

“나 먼저!”라는 말은 아이들에게 가르치지 않아도 되는 말입니다. 인간의 이기심은 정말 본능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아이들의  이기심, 아니 인간의 이기심은 종종 형제 간의 다툼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형제간의 경쟁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아마 야곱일 겁니다.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 형의 발꿈치를 잡았다는 사람… 유대인은 장자가 다른 형제들의 두 배의 유산을 상속받습니다. 그래서 쌍둥이의 경우 늦게 나온 아이는 당연히 불공평하다고 느낄 겁니다. 물론 신생아가 그런 걸 알리는 없습니다만,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는 것은 그의 인생 전반에 대한 복선이기도 합니다. 야곱은 늘 형을 이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야곱은 사냥을 다녀와서 기진맥진한 형을 잘 관찰해 두었다가 기회를 봐서 장자권을 팔게 하고, 아버지를 속여 형의 축복을 가로챘던 기회주의자였습니다. 그래 놓고는 보복을 피해 도망갔던 겁쟁이이기도 했습니다. 장자권을 놓고 형과 거래하던 그는 아내를 놓고 외삼촌과 거래했고, 자신의 안녕과 부를 확보하기 위해 하나님과도 거래하려 했던 지극히 계산적인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야곱이 이런 인생을 살게 된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이 자기 꺼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인생의 줄을 자기가 쥐고 살려고 부던히도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이기심과 물질주의 속에서 파산한 상태

오 나는 곤고한 사람

역사적으로 노예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었습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노예는 잉여 노동력이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근대 미국의 노예는 유동 자산(chattel)의 의미였습니다. 노동력이라 인식되면 인권이 생기고, 사고 파는 것이 제한됩니다. 자산이라 생각하면 학대해도, 죽여도, 사고 팔아도 상관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노예 주인들은 늘 노예들을 비인간화하는 일을서슴치 않았습니다. 인간으로 보이지 않아야 학대하고 사고 팔아도 양심의 가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히브리 노예의 개념은 가정을 돕는 추가적 노동력의 개념이었습니다. 그래서 6년 주인을 섬기면 7년 째에는 자유를 되찾게 해주는 희년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예 중에는 자기 주인이 좋아서 7년 희년이 되어도 자기가 주인과 함께 남아 계속해서 노예로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러면 주인은 그를 데리고 문지방으로 가서 그 귀를 뚫어 영원히 노예됨을 표시했습니다. 죄가 갖는 구속력이 얼마나 큰 지를 경험했던 사도 바울은 인간의 삶이 바로 죄의 노예와 다름 없음을 직시했던 사람입니다. 그강력한 힘 아래 치열하게 살던 그는 마침내,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외치며 죄의 억압으로 인한 인간 삶의 고단함을 인정했던사람입니다. 그는 또한 죄의 억압으로부터 자신을 자유하게 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경험해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기쁨으로 그리스도의 영원한 노예

정의란 무엇인가?

저 유명한 마이클 샌달 교수의 정의(Justice)라는 책을 읽은 어떤 기자가 이렇게 보도하더군요: “그 책을 읽고 나니 정의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마이클 샌달의 강의를 다 들었습니다만, 강의를 듣고 나서 정의가 뭔지 더 헷갈리는 경험이 있었습니다.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개념이 많기 때문입니다. 철학자들이 말하는 정의는 단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론 사안의 복잡성(complexity)를 인정하는 것이 담론의 출발점과 마지막 점이 되기도 합니다. 전쟁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를 논의하는 Just War Theory도 비슷한 고민들을 담아내는 철학, 신학, 정치학자들의 담론 거리입니다. 정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합니다. 마태복음 20장을 보면 “포도밭 주인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이 포도원 주인은 시장에 나가서 일꾼들을 데려오는데, 아침 9시, 12시, 3시, 오후 5시까지도 나가서 일거리를 찾아 기다리는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할 일을 주었습니다. 일이 다 마친 후에는 가장 늦게 온 사람부터 약속한 한 데나리온씩 일당을 줍니다. 먼저 온 사람들은 늦게 온 사람들이 한 데나리온 받는 것을 보고 자기는 더 받을 줄 알았는데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으니 불평을 합니다. 하지만 주인은 분명히 말합니다: “나는 너와 한 약속을 지켰고, 늦게 온 사람에게 똑같이 주는 것은 너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자비다.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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