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이 나를 광야로 이끄시다

나에게 좋은 것을 주는 사람이 좋습니다. 나를 좋은 환경에 두는 사람에게 감사를 느낍니다. 나를 “푸른 초장으로, 쉴 만한 물가로” 이끌어 주시는 그 분을 나는 신뢰할 수 있습니다. 나를 굶주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를 사지로 몰아내는 사람이 있다면, 나의 얼굴을 원수의 얼굴 앞으로 들이미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믿지 못할 것입니다. 원망을 퍼붓겠지요. 나에게 이런 짓을 하는 당신은 제 정신이 아니라고 말할 겁니다. 나에게 그러는 것은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내 자식에게 그런 대접을 한다면 정말 화가 나겠지요. 나 자신을 위해 분노하지 않았던 사람도 내 자식에게 그런 대접을 한다면 분노하는 내 모습도 정당화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을 광야로 이끌어갔던, 사십 일을 밤낮으로 굶주리게 했던, 원수의 면전으로 그 얼굴을 향하게 했던, 그 분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우리로 하여금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자비, 선함,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들을 맺게 하시는 그 성령께서 우리 주님을 광야를 내모셨습니다. 우린 때로 나에게 어려움이 오는 것은 사탄의 시험이라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정의를 추구합니다

마이클 샌달이라는 교수가 있습니다. “정의”라는 제목의 철학 강의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철학자입니다. 이 분의 첫 강의는 재미있는 예화로 시작합니다. 당신이 전동차 운전자입니다. 레일을 따라 언덕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브레이크가 고장이 났습니다. 당황하여 어떻게든 차를 세워보려 하지만 기계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눈을 들어 앞을 보니 사람들이 다섯 명 서있습니다. 소리를 질러 보지만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갈림길이 나와 거기서 왼쪽으로 틀면 거기에는 한 사람만 서있습니다. 그냥 가게 둘까요, 아니면 방향을 틀어서 한 사람만 죽게 할까요? 자 이번에는 상황을 바꿔 봅니다. 내가 길에 서있습니다. 저 언덕 위에서 전동차가 달려오는데 운전자의 얼굴을 보니 브레이크가 들지 않아 너무도 당황한 것 같습니다. 그냥 차가 가면 앞에 길에 서 있는 다섯 사람을 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옆을 보니 아주 뚱뚱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밀면 차가 멈춰 다섯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을 밀어야 합니까? 중요한 이슈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가치를 숫자로 정할 수 있는가 (한 사람 vs. 다섯 사람), 수동적으로 다섯 사람 죽게 두는 것과, 다섯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모는 능동적 대처 사이에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사실 정의의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그러다 보니 평생 이 문제만 연구하는 학

하나님과 협력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때 아무리 수영을 잘 하는 사람도 절대로 그 사람 앞으로 가면 안됩니다. 그 사람이 나를 잡고 놓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 그 사람도 죽고 나도 죽게 됩니다. 사람을 구하려면 그 사람의 뒤로 잠수하여 가서는 목을 잡아야 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의 머리를 내 옆에 얹고 옆으로 수영하는 겁니다. 쉽지 않고 많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물에 빠진 이 사람이 몸을 돌려 나를 잡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사람을 때려서라도 나를 붙잡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구조하는 사람이 리드해야 합니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봅시다. 내가 수영을 못하는데 물에 빠졌습니다. 저기 인명 구조원이 나를 보더니 구하러 옵니다. 그 사람을 무조건 붙잡아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그 사람의 방식대로 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그 사람의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도록 물에 빠진 사람은 기다려야 합니다. 그 사람이 일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 둘 다 살 수 있습니다. 물리학에 벡터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두 개의 힘이 서로 다른 크기와 방향을 향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두 힘이 만날 경우 그 힘의 방향과 크기가 어떻게 정해질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이 벡터입니다. 힘은 그 크기 못지 않게 방향이 중요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늘 힘의 방향을 생각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힘을 쓰시는 방향으로 나도 그 힘을 합치면 내가 주님의 일에

인생이라는 책에는 여러 개의 챕터가 있습니다

저 옛날 가난한 한국인들은 주식인 쌀이 부족하니 산에도 심을 수 있는 옥수수를 심어 그것을 말려 저장해 먹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나마도 충분치 않으니 각종 먹을 수 있는 나물들을 찾아 먹어보고, 때론 독이 있는 나물들 조차도 독소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음식 거리로 만들곤 했습니다. 저 옛날 가난한 한국인들은 고기를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뼈 속에 있는 골수를 먹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부자들이 고기를 떼어먹고 버린 뼈를 오래오래 끓이면 그 안의 골수들이 빠져나오는데, 이 골수가 영양가가 매우 많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모든 방법들은 한국 땅에 물이 많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물이 없는 곳에서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뽑아 먹을 잡초도 없는 곳, 고기 먹고 남은 뼈를 끓일 수도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노인과 어린이들을 데리고 40년을 견뎌낸 민족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히브리인들입니다. 급하게 애굽을 빠져나온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싸온 음식들이 다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경험했을 절망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만나를 주시고 메추라기를 보내주셨습니다.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40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어느 날 그 공급이 사라집니다. 아무 것도 쌓아둔 것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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