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다는 것, 어떻게 보여줄까

1892년, 클리포트 캘벌리라는 사람이 나이아가라 폭포 양쪽에 밧줄을 매고 그 위를 건넌 일이 있었습니다. 손수레(wheelbarrow)를 몰면서 그 밧줄 위를 걸었으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지요. 건넌 뒤에 그는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소리쳤습니다. “자, 이제 보았으니 내가 이 밧줄을 타고 저편으로 다시 건너갈 수도 있다는 걸 믿소?” 물론 다들 믿는다고 환호성을 터뜨렸습니다. “당신들은 내가 여기 손수레에 사람을 태우고 건널 수도 있다는 것을 믿소?” 다시 물었더니 역시 그렇다고 열렬히 대답합니다. “자, 그럼 누가 이 손수레 위에 타겠소?” 이번엔 찬물을 끼얹은 듯한 침묵—아무도 그에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에 목숨을 거는 것이 과연 값어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진정한 믿음은 손수레에 올라타는 것입니다. 단순히 옆에 서서 “나는 믿소”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이런 믿음이 아닙니다. 믿습니까? 아멘! 타겠습니까? 노웨이! 믿음은 겉으로 드러나야만 하는 진실입니다. 하지만 내 속, 내 마음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질그릇은 약해서 눈비 맞고 온도가 오르내리면 점점 허물어집니다. 그러나 그 그릇이 허물어지면 허물어질수록 그 안에 담

싱크홀인가 베니스인가

싱크홀인가 베니스인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인 베니스는 6세기 훈족의 확장 때문에 처음 개발되기 시작한 도시입니다. 말을 타고 침략하는 적들을 피해 이태리 본토에서 온 베니스 사람들은 기병들이 오지 못하는 늪지대와 섬으로 도망을 쳤지요. 말은 몸이 무겁고 다리가 길기 때문에 진흙탕에 가면 움직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급기야 늪지대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는데, 집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현재와 같은 도시를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118개의 섬이 400여 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정말 독특하고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베니스 사람들은, 늪지대에 뾰족한 나무를 깊이 박으면 그 나무가 점점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지면서 견고한 기반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흙 속에 나무를 박아 놓으면 썩을 것 같은데 썩지 않고 오히려 단단해진다는 것입니다. 화석이 생기는 원리와 같습니다. 진흙 속에 있는 탄소가 목재 안으로 들어오면서 탄소 밀도가 높아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콘크리트보다 더 견고해지는 것이지요. 덕분에 늪 지대에 지은 집들이 수백 년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습니다. 반면 아무리 콘크리트로 기초를 단단하게 만들어도 그 아래 싱크홀(sinkhole)이 생기면 대책 없습니다. 싱크홀은 석회암, 석고암과 같이 물에 잘 녹는 암석이 자리할 경우 조금씩 녹아내려 그 아래 지하수가 존재할 경우 지반이 가라앉는 현상을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되돌아보면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 여럿 있습니다. 어릴 때 놀리고 때리고 도망가던 아이부터 시작해서 교만하고 무례하던 직장 동료까지, 내 주변에는, 또 우리 주변에는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람을 미워하면 살인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지만, 마음 속으로 사람을 해친 일은 다들 많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관계 개선의 실마리가 전혀 보이지 않고 밉기만 한 사람들이 어쩌다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래서 원수 갚는 방법을 가르치는 성경의 가르침에 귀가 솔깃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 때,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쌓아 놓는다는 성경의 비유는 통쾌하게만 여겨지지요. 그러나 문제는 그 방법입니다. 원수가 목말라 하면 물을 주고, 배고파 하면 먹을 것을 주는 것이 그의 머리에 불타는 숯불을 올리는 방법이라고 하니 이건 뭐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원문의 해석을 보면 더 그렇습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사람이 머리에 숯불이 들은 항아리를 지고 간다는 것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즉 머리에 숯불을 올리는 것은 머리가 불에 타도록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숯불을 머리에 이고 가며 자신의 죄를 후회하고 돌이키도록 유도한다는 개념인 것이지요. 물론 원수가 벌받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그리 유쾌한 상황은 아닙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여 멸망을 피하는 것을 보고 너무너무

오늘 입고 나갈 옷은?

며칠 전 오랜만에 아이들에게 태권도 시범을 보여준 일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태권도복을 입고 띠를 맺더니 이십 년 전에 하루 다섯 시간씩 연습하던 느낌이 나서 아주 열심히 했다가 그 다음 날 몸이 아파 혼났습니다. 그냥 운동복 입고 했으면 그렇게 열심히 안했을 것 같습니다. 군에 있을 때는 정복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일반적으로 입는 옷은 전투복이라고 하고, 정복은 행사가 있을 때 입는 옷입니다. 정복을 입으면 짝다리도 짚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됩니다. 하지만 전투복으로 갈아 입으면 이내 진흙탕에서 이리저리 굴러도 괜찮을 것 마음으로 바뀝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은 스크럽이라는 옷을 입습니다. 공기도 잘 통하고 참 편합니다. 저도 그 옷이 편해서 집에서 자주 입곤 하는데 이 옷을 입으면 왠지 옷에 피가 묻어도, 땀과 체액이 묻어 더러워져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또 반면 양복을 차려 입으면 행동을 조심하게 되고 말도 긴장해서 하게 됩니다. 사람들도 저를 다르게 보는 것 같습니다. 사역하면서 중고등학생들이 학교에서 문제가 생겨 교장 선생님 만나러 간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그럴 때는 늘 양복을 차려 입고 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미국인 교장 선생님이 대화가 마칠 무렵 저보고 변호사냐고 묻더군요. 아마 그런 줄 알고 제 요구사항을 다 들어줬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양복 잘 차려입고 간 효과를 보았습니다. 몸에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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